글을 쓰기에 앞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주체(主體)적인 문화수용자란 무엇인가? 내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부터 주체(主體)고 어디서부터 수동(受動)적인가 규정(規定)지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을 제외하고 자신을 직접 판단하는 것은 정말이나 힘든 일이다. 내가 보는 눈은 앞만 바라볼 뿐이지, 멀리서 나 자신을 지켜볼 수는 없다. 이런 것처럼 내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觀點)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주체(主體)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수동(受動)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문화 매체를 받아들이는 내 생각과 관점(觀點)을 말하면서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나는 문화를 바라볼 때 그 자체의 가치(價値)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시청률 38.8%라는 경이로운 결과로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화 코드와 세계 속에서 한류의 가치를 높여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로 보자면 아주 탁월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허상(虛像)에 빠져 그것을 진실로 여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화를 받아들이는 가장 큰 오류(誤謬)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현직 육군 장교 출신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태양의 후예가 방영되고 나서 실제로, 군인을 소개해달라는 여자들의 요청이 늘어났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길까? 사람들은 드라마가 가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서도 은연중에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송중기 같은 군인은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에피소드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자그마한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셈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 축적되고 일상이 되어가면 어느새 그 사람의 가치관은 바뀌어 국뽕 같은 사회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드라마의 사회적 시멘트(social cement)기능인 것이다.
지금은 아주 괜찮아졌지만 나 역시 주체(主體)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안개 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SNS 중독으로 여겨질 만큼 수시로 핸드폰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해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시간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행동들이 친구들의 동향을 알 수 있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서 나 자신한테 이로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웹상에서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어도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나 자신이 받는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은 커졌다. SNS 속에서 겪은 군중 속의 고독은 나한테 계속해서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 주었고 결국 나는 핸드폰에서 페이스북 앱을 삭제하고 말았다.
주체(主體)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문화를 주체(主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성인으로서 살아왔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들 중 일부에 종속(從屬)된 채 살아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체(主體)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나는 부족하고 어린 존재인 셈이다. 다만 인간은 발전하는 동물이듯이 나 역시 1년 단위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 성장 속도가 조금만 더 빨리 진행되어서 내가 문화의 노예로서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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