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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수필모음 / / 2017. 9. 5. 00:50

신용카드




아휴.. 저게 아들이냐 원수지 이 돈 쓰는 기계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돈을 낭비하며 살았다. 또래 친구들이 비상금 100만 원 1000만 원 모을 때 내가 모은 돈이라곤 고작 10만 원 남짓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머릿속에 찜해두고 할머니, 어머니께 떼를 쓰며 사달라고 했다. 안 먹힐 때는 가게 돈 통에서 몰래 돈을 훔치곤 했다. 내가 돈 쓰는 습관을 아버지는 탐탁지 않게 여겼다. 중학교 들어와서 매주 용돈을 받게 됐는데 아버지는 매일 통장에 잔액이 얼마 남았는지 보고하라고 했다. 거짓말하다 걸리면 여지없이 야구방망이를 손에 들고 내 엉덩이를 후려쳤다.



대학생이 되자 부모님은 집밖에 나가 있는 아들이 걱정이었는지 한 달에 40만 원이라는 큰돈을 용돈으로 주셨다. 매달 11. 오전 10시에 돈을 입금해 주셨는데 나는 번거롭게 하지 말고 그냥 신용카드 주면 안 되나요?”라는 말을 아버지께 드렸지만, 과감히 무시 당했다. 대신 체크카드를 발급해 사용했다. 부모님의 간섭도 없는 대학교는 신세계다. 기숙사라 밤늦게 들어와도 아무도 질책하지 않았기에 물 만난 고기마냥 놀아댔다. 흥청망청 돈을 쓰니 통장 잔액은 내내 부족했다. 가불해달라고 부탁하기가 한 번, 두 번. 용돈 주기는 어느새 한 달에서 3주로 바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날씨가 추워져 가기 시작한 가을. 1학기 때부터 짝사랑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랑 사귀기 시작했다. 슬픔과 분노에 미쳐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일주일 내내 내리 마셨다. 인생의 둘도 없을 정도로 돈을 낭비하다 보니 일주일도 안 돼 잔액이 바닥을 드러냈다. 부모님께 혼날까 봐 말하지도 못하고 결국 친구한테 엄마 신용카드를 빌려 대신 사용했다.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말처럼 얼마 안 가 이 사실이 친구 어머니 귀에 들어갔고 자연스레 부모님도 알게 됐다. “당장 내려온나.” 전화기에서 들린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게 다였다.



수업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어떻게 변명할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직접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미친 듯이 맞겠지.. 1, 2개는 부러질 텐데 애들한테 뭐라고 말하지.’ 부모님을 마주한 그 순간에도 죄송스런 마음보단 찌질한 생각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보면서 내 손을 잡았다. 뭔가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손에는 아버지가 절대로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자그마한 신용카드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일어섰다. 그러고는다음부턴 그러지 마라는 말을 끝으로 나를 남겨두고 뒤돌아 가셨다.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지금까지 나를 혼내시던 그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한없이 크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등은 어느새 왜소해졌다. 겉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아버지는 그 등으로 모든 걸 말씀했다. 세월은 아버지를 바꿨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눈을 뜰 수가 없다. 계속 감고 싶다. 조용한 방안에서 뚝 뚝 소리만 들린다. 손에 쥔 플라스틱이 너무 뜨겁지만 놓을 수가 없다. 그 불길에 나 자신이 송두리째 타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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