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형제 중 막내이자 작은형과 10살 차이로 태어난 나는 다른 두 형들과는 전혀 다른 성장 과정을 거쳐 왔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너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라는 아버지의 말을 5살 때부터 들어오면서 남자뿐인 집안에서 어머니를 서포트 해주는 유일한 여자 역할을 하게 됐다. 가족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작은형이다.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유독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작은 형은 언제나 나한테 자주 성을 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참는 거에도 한계가 와서 한번 일부러 형의 말을 무시하고 대들었다. 집에 컴퓨터가 1대 밖에 없어서 내가 1시까지 쓰고 그다음부터 형이 쓴다고 약속했었는데, 일부러 시간이 지나도 아무 말 안하고 게임에 빠졌다. 자신의 말을 무시한 동생이 얄미웠는지 형은 욕을 하면서 주먹으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갈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얼굴을 자주보기 힘들게 됐다. 형 역시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고시원에 틀어박혀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은 명절때 말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수능이 끝나고 내가 원하던 대학교에 최종합격이 결정된 그 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고깃집으로 외식을 나갔다. 물론 작은 형도 함께했는데 그날은 왠지 술도 잘 마시지 않는 형이 아버지가 주는 소주잔을 거절하지 않고 계속 받아들었다. 아버지와 형 모두 술을 상당히 많이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나랑 어머니가 끙끙대면서 두 덩치들을 차에 옮겨놓고 술을 한잔도 안 드신 어머니가 핸들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술에 떡이 된 아버지를 잡아 끌어 침대에 눕혀놓고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어가려고 했다.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술에 취해 먼저 잠든 줄 알았던 형이 나를 불러 세웠다. 오랜만의 대화라 나는 조금 긴장했지만 형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대학교 입학해서 축하해. 성욱아 형은 말이야 사실 네가 너무 부러웠어. 본인이 하고싶은거 하고 살고 나는 그러지 못했거든. 난 원래 간호사를 하고 싶었어. 이런 공무원 준비 같은 거보다 남들 도와주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는데. 네가 태어나고 나서 부모님의 관심이 떨어지니까 왠지 모르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가 힘들어지더라. 부모님은 자꾸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하라고 하셨고 형으로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는 말만 계속하시니 내 속마음을 제대로 말하기가 힘들더라. 너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형처럼 이렇게 지내지 말고. 그리고 미안하다. 지금까지 너무 막 대해서.” 형은 말을 이어나가면서 자주 손으로 눈 주위를 문질렀고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19년을 살면서 수없이 형을 미워하고 증오했던 내 마음이 그 순간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 싫어하고 정말로 미워 마지않는 형인데. 진심이 담긴 한마디의 말들이 내 마음 언저리를 계속해서 쑤셨다. 어느 순간 내 눈에는 이슬 한 방울이 고여 있었다. 4년 전 흘렸던 차가운 방울과는 다른 따뜻한 무언가가 내 마음을 타고 떨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