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볕 아래 만물의 자손들이 한껏 기지개를 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이고 있는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숨어다니지만, 자세히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는 귀여운(?) 친구가 하나 있다. 3mm 정도 크기의 아담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친구의 일생은 약 3주 정도로 사춘기가 지나간 지도 모를 만큼 짧은 시간인 14일 만에 어른의 모습을 갖춘다. 이 친구는 본인의 수명이 여타 다른 생물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짧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생애가 짧은 만큼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늘을 뛰어다닐 수 있는 다리가 생겨난 뒤부터 이리저리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안 가 하늘의 이슬로 사라질 목숨임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원하는 일을 해나간다. 갓 난 아기 때 가보고 싶어 점찍어 두었던 곳을 혼자 바람을 스치며 날아가기도 하며, 자신과 함께할 이성을 찾아 자손을 널리 남기기도 한다. 그 작은 몸에 담긴 기개는 마치 12척의 배로 일본군 133척의 배와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과 같아 보인다.
어쩌면 짧으므로 후회하지 않을 일들을 모두 하고 사라지려고 하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긴 삶을 이어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앞으로 있을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의 삶에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무언가에 두려워하며 겁에 떠는 모습은 덩치만 컸지, 저 조그만 친구보다 한참이나 나약한 존재이다. 그런 우리의 삶이 과연 주체적으로 보일까? 부모님이 정해준 직업, 선생님이 주입해준 지식, 분위기에 휩싸여 소신 있는 결정을 저버리는 이 한심한 모습들을 보면 저 조그만 친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를 바라볼까?
수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며, 자신의 우둔한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시킨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내가 나서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될 거야.’라는 말들로 자신의 한계를 멋대로 규정짓는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개그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콩트로 여겨질 만큼 어이가 없다. 그냥 부딪쳐 보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은 생각이 앞서 행동을 브레이크 해놓은 셈이다. 저 조그마한 친구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날아드는 한 발자국이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그것이 일으키는 변화의 파도를 두려워한다. 편안함에 안주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은 골리앗이 다윗에게 진 것처럼 더 작은 존재보다 못한 셈이다.
이제는 그들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마지막으로 쌓아둔 한을 풀어내려고 하는지 나뭇잎에 고여 있는 아침이슬을 먹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Droso philidae라는 학명이 왜 붙여진 지 이해하겠다. 참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배웠다. 고맙다. 내 친구 초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