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둘도 없을 소중한 친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게 물들고 매번 잠을 설친다. 혹한의 추위가 살을 에는 2014년 12월. 말년 병장으로 제대를 코 앞에 둔 나는 부대에서 우연히 만난 자그마한 고양이를 다른 사람들 몰래 키우고 있다. 눈같이 하얀 순백의 처녀의 모습을 한 그 아이는 누군가의 손을 탄 고양이인지 처음부터 사람을 참 잘 따랐다. 그것을 보고 있던 후임들은 고양이가 있는 장소인 방송실의 이름을 따서 송실이라 불렀는데 어느새 부대 내의 최고 인기스타가 됐다. 부대에 고양이가 있다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절대 듣지 말아야 되는 사람 중 1명인 인사과장의 귀에 들어가게 됐다. 국군법 조항을 들고 “영창갈래? 고양이 버릴래?”라고 협박하는 인사과장은 노여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인사과장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부랴부랴 친구한테 내일 면회 오라 말했다. 내가 없는 사이 누가 송실이를 데려갈까 봐 하루 종일 방송실에서 농성을 했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내 눈도 스르르 감겨왔다. 멀리, 저 멀리 어둠속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외침에 눈을 뜨자 내 옆에는 자그마한 아이 대신 큰 아이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한성욱 병장님 큰일 났습니다. 중대장이 송실이를 철조망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귀를 때리는 청천 벽력같은 소리에 후임을 버려두고 문을 박차나갔다.
철조망 밖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송실이가 홀로이 있었다. 던져진 것에 겁먹었는지 떨어질 때 다리를 다쳤는지 계속 그 자리에서 구슬픈 목소리로 울기만 했다. 나는 고양이를 구조하려 모센 추위에도 상관없이 1시간, 2시간이 지나도록 구조에 힘썼다. 오랜 시간 밖에서 고양이를 구출하려 난리치는 것을 못마땅해 한 인사과장은 나를 불러 진술서를 쓰고 반성하라고 했다. 몇 번이나 인사과장의 감시를 뚫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주위 간부, 병사들이 “이러다 너 진짜 영창 가. 말년에 참아.”라는 말과 함께 내 몸을 제지했다. 진술서를 쓰는 도중에도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송실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제발 송실이가 그 자리에 남아있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것을 보다 못한 작전과장이 그만 애를 풀어 달라 말했고 나는 바로 송실이가 떨어진 철조망 앞으로 향했다. 후임한테 LED 랜턴을 빌려 샅샅이 수색했지만 고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밖에는 송실이 털처럼 하얀 순백의 눈이 쏟아지고 있었고 고양이의 모습을 하듯이 조용히 쌓여갔다. 가득 쌓인 눈과 함께 점점 철조망이 눈앞에서 아른아른 거렸다. 조용히 들려왔던 야옹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눈을 뜨니 2016년 12월의 밤이다. 오늘 밤도 조용히 눈은 내리고 있다. 내 곁에는 어느새 송실이 대신 다른 고양이가 새근새근 잠에 빠져있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을까. 한 선택으로 인해 나와 송실이는 평행선을 걷게 됐다. 어딘가에서 잘 살아있을까. 나랑 같이 지금 내리는 이 눈을 바라보고 있을까. 시간은 1초, 1분, 조용히 흘러간다. 어느새 내 눈가에도 조그마한 순백의 물방울이 하나 둘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