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이웨이다. 살을 에는 듯한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날. 나 혼자 남아있는 조그마한 왕국에서 약소한 술잔을 기울인다. 자고 나란 고향을 떠나 타지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꿈 하나만을 바라고 버텨나가기에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 많이 그리운 작은 아이는 바쁜 일상에 파묻혀 억지로 감정을 죽여 살아간다. 가족, 친구, 추억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찾아온 춘천 땅에서는 모진 추위만 가득하다. 아래지방에서는 가을이 다가왔다며 멀리 여행을 떠나가는 시기에 이곳에서는 시베리아의 바람이 한 움큼 찾아와 풍취와는 거리가 먼 두터운 옷차림으로 학교로 향한다. 지친 청춘들의 일상이다.
오래된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1이라는 숫자가 영원히 안 사라지게 된 것도 이쯤부터였다. 안개 낀 강가에서 뿜어져오는 서늘한 숨결이 어느새 내 마음도 차갑게 만들었을까? 학창시절의 추억을 안주삼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도 지금은 무리다. 마음대로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친구와의 추억은 내 맘에 생채기를 새길 뿐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고향땅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면 다들 뭐 그리 바쁜지 타지에서 과제, 시험 준비에 바빠 오랜만에 내려온 친구를 볼 여유가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사망년(대학교 '3학년'이 온갖 스펙을 준비하느라 고통을 받아 '사망(死亡)'할 것 같은 학년이란 의미)이란 말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부랴부랴 준비한지가 1년이다. 2달 남짓한 시간이지나면 어느새 20대 중반, 4학년이라는 대학생의 마지막 고비에 접어들게 된다. 1학년 때 같은 꿈을 목표로 한 친구들은 이미 제 갈길 가기위해 바쁘다 보니 동기모임 이란 작은 추억거리도 과거 속에 묻힌 지 오래다. 새벽 늦은 밤까지 각자의 원대한 꿈을 이룬 것 마냥 마시고 떠들던 포부 넘친 새내기들은 어느새 도서관 책상에서 토익 단어 1자 더 외우려고 발버둥치는 헌내기가 다 됐다. 2016년 10월 31일 11시 30분 도서관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춥다고 옷을 4겹이나 껴입은 데도 바람이 차서 그런지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워서 그런지 옆구리가 자꾸 시리기만 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고향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 어머니의 따뜻한 밥, 첫사랑과 지냈던 짧은 시간들 떠오르는 그림 하나하나에 그리움도 같이 아른아른 거리며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노스텔지아로 갈 수 없는 작은 대학생은 자취방에 흘러넘치게 많은 이슬을 뱉어내고 같이 지내던 조그마한 동행자는 서서히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빈다. 그래 너도 나랑 똑같았지. 가족의 온기가 아직 그리운 우리. 어리지만 어린티를 낼 수 없는 우리는 서로 다가와 얼굴을 맞댄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작은 고양이 친구는 품에 안겨 작은 잠을 청한다. 아련한 아이의 보드라운 숨결. 그 곁에 투박한 아이의 거친 숨결도 함께한다. 2016년 10월 31일 마지막은 추위에 지친 하루였지만 2016년 11월 1일. 10월의 추위를 뒤로하고 따뜻함을 간직한 11월의 하루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