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총 맞아 피살. 휴전선 방송. 열차 타고 가다 총격받았다’ 이는 1987년 11월 17일 조선일보 기사 1면에 적힌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조선일보 측에서는 세계최초로 김일성 사망을 보도했다고 자찬했다. 기쁨도 잠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일성이 몽골 공산당 서기장을 영접하기 위해 나타났다. 오보가 생산된 발단은 찌라시처럼 나돌던 김일성 총격설을 조선일보가 총격 사망으로 보도하기 시작하면서이다. 특종 욕심에 눈이 멀어 사실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채 기사를 생산한 게 문제였다. 전 세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오보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2일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240번 버스 사건을 네이버 검색순위 1위로 만드는데 큰 공로를 한 것이 언론이다. 아이랑 떨어진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고 제 갈 길 간 버스 운전사. 많은 사람이 버스 운전사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여겼다. 언론사 역시 사실관계를 하지 않고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 그대로 보도했다.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도 언론사는 마녀사냥이 잘못이라는 식으로 특집 기사를 작성했다. 그들이 행한 실수는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했다. 내로 남불 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무책임한 행동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전역을 슬픔에 도가니로 만든 세월호. 최초 사건 시간인 오전 9시로부터 2시간 지난 11시 1분 단원고 학생 324명이 모두 구조됐다는 자막이 MBC 뉴스를 통해 나왔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연이어 보도했으며 많은 사람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여겼다. 진실은 달랐다. 당시에 구조된 인원은 100여 명 밖에 없었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바닷속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를 담당하던 부처도 오보를 진실로 믿고 안도하고 있었다. 사실관계를 확인할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사가 특종에 눈이 멀어 팩트를 확인하지 못하고 보도 자료를 그대로 베껴 보도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언론사도 마찬가지이다. 30년, 3년 전 사건을 통해서 오보가 만들어낸 사회 혼란을 직접 겪으면서도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은 언론의 책임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것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된 이 법은 재판에서 죄가 확정될 때까지 피고인을 무죄로 여긴다. 죄인 10명을 만드는 것보다 1명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사건을 다루는데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이 내보낸 기사 내용에 따라 개인과 단체는 제각기 다른 사회적 판결을 맞이한다. 기사 내용이 긍정적으로 쓰이면 당사자가 지닌 평판이 급속도로 상승하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처참할 정도로 떨어진다. 기자가 쓰는 글에 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 사실관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정에서는 유죄를 확정시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증거를 제출하고 길면 2년 넘게 재판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에 비해 속보성을 중시해 빨리빨리 내보내는 것만 중요시하는 언론사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뿐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 피터파커가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다. 가벼운 행동 하나로 수백 명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슈퍼 히어로기에, 그들은 이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 우리나라 언론에 가장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그저 언론인이 적어내는 몇 마디가 쉽게 써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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