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으로서 첫 월급을 받았다. 월급이라 부를 만큼 큰돈을 받은 건 처음이다. 누군가에게는 적고 누군가에는 크다고 느껴질 금액. 그게 내 사회초년생 첫 월급이었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허리디스크가 생겨, 오랜 시간 책상에 앉지 못해 언론고시를 중도 하차했고, 때마침 이별의 쓴 잔도 마셨다. 몸과 마음 둘 다 순탄치 않았고 코로나의 위협도 스멀스멀다가오기 시작할 때였다.
하루하루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12시에 누워도 새벽 2시가 넘어야 가까스로 잠에 빠질 징조를 느꼈다. 인터넷으로 쳐다본 재활 수기 등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1년의 세월 동안 제자리에 누워 지내고 걷고 운동하면 낫는다고 하는 말은 나에겐 부자들의 치료법으로 느껴졌다.
난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취직 자체는 순탄했다. 다행히 나를 찾는 곳이 있어, 프리랜서로 먼저 일을 시작했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일은 늘 많았다. 일을 빨리 한다는 평을 들어도, 호숫가에서 할거리를 퍼오는지 무한히 많은 일감이 쏟아졌다. 프리랜서로 지내는 동안 집에서 근무하는 일이 많았고, 허리 통증도 찾아오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꿈을 포기한 걸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허황된 꿈이었어. 돈 벌고 그냥 사는 게 삶이지."
과거, 내가 혐오하던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를 때, 나는 자신을. 혐오하지 못했다.
프리랜서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처음으로 연봉 협상을 하고 직급을 받았다.
'주임'
사회초년생의 첫 직장치곤 높은 직급이었다. 주임이지만 난 팀의 막내였다. 회사가 이사하고 처음으로 전 직원이 모여, 자리를 가졌다.
대표는 회사 직원들의 이름과 직급을 하나하나 부르며 소개했다. 호명 당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각오를 말했다. 내 차례가 왔다.
"xxx 부 xxx 주임"
모두의 시선이 날 향했다. 난 자연스레 팀의 막내 직원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겠다는 뻔한 대답을 내놓았다. 차례는 자연히 넘어갔고, 나는 그 자리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싫었다.
어느 부서의 누구, 어느 회사의 누구. 나를 부르는 호칭은 그것으로 통일됐다. 회사로 인해 알게 된 많은 이들 또는 지인들도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기계속 부품이 된 것처럼 느껴져 듣기가 싫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인 '주임님'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 TOP 5위중 하나가 되었다.
어머니는 아직 내가 어린아이라고 했다. 세상 사는 법을 모르는 어린아이. 적응하는 게 사는 거고, 그걸 언제쯤 받아들일 거냐고 나를 다그쳤다. 대판 싸웠다. 어머니의 말이 듣기 싫어, 입을 다무라말했다. 화가 났다. 어머니한테 화풀이 한 내 자신이 싫었다.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문제를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거부감이 일었다.
'나'만 바뀌면 된다.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 나는 아직 어린아이다. 세상에 적응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 사회초년생이란걸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 괜찮아질까? 그러면 언젠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나둘 시간은 흘러갔다.
오늘도 난 내 호칭이 싫다.
여전히 난 어린아이이고, 어른이 되기엔 멀었다. 하지만, 영영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 어른이 되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 를 잃어버릴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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