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한순간에 바뀐다고 했다.
바로 밑에 층까지 들릴만큼의 굉음과 함께 바닥에 고꾸라진 19년의 12월부터, 난 더 이상 오래 앉지 못하게 되었다. 계기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막노동을 한것도, 평소에 짐을 무겁게 하고 다닌 것도 아닌, 그 몸에 좋다는 홈트레이닝을 하다 나는 허리에서 나는 뚝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27살의 겨울. 살면서 처음 구급차에 실려 보았다.
MRI를 찍고 나서, 의사는 정말 태연하게 허리디스크라고 나의 상태를 명명했다.
4일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퇴원했다. 3일간은 침실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일어나려고 몸을 조금만 돌려도, 입 밖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격렬한 고통이 내 몸에 일었다. 환자들이 하반신을 자르고 싶다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병원에 있는 3일 동안은 정말 다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1개도 남김없이 잘라버리고 몸 전체를 로봇으로 바꾸고 싶었다.
퇴원 후 부터는 걷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상태가 나아졌다. 기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한 달여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의자에 20분을 앉아있으면, 다리 밑에 전류가 돌았다. 마치 내 다리가 전기에 대한 저항이 0에 수렴하는 기분이랄까? 나는 지인들을 만날때마다, 내가 피카츄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남들은 내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여 웃어넘겼다. 나도 그들처럼 맘 껏 웃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의자에 앉지 못하게 되고, 허리디스크에 좋다는 침대와 독서대, 관련 용품들을 구매하는 데만 5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 당시를 벗어나 지금까지 쓴 돈만 합치면 100만 원을 가볍게 넘을 것이다) 누구한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테지만, 구직자들은 알 것이다. 아껴쓰면 두 달 식비정도의 금액이란 걸.
앉는 걸 포기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자가 되기 위해 하던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책 읽는 것도 불편했다.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었으며, 스터디 모임에 나가서 같이 공부하는 건 아예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내가, 글 쓸 몸이 안된다는 걸 깨닫고, 수십 번이나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울은 한 번 덮치면 그 사람 한테 계속 남아, 자신의 존재의 영향력을 자꾸 높인다. 두 달 동안 공부도 못하고, 글도 못쓴 채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군대 있을 때 이후 처음으로 칼을 손목에 갖다 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저 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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