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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습니다. 사회 초년생

 

 

디스크가 터지기 전, 프리랜서로 영상 촬영일을 하고 지냈다. 학과 자체가 영상 관련 학과였던지라, 대내외 활동으로 영상을 기획/촬영/제작 일이 많았다. 학교를 휴학 후 대책 없이 서울로 올라간 뒤에, 적어도 용돈벌이라도 할 겸, 행사가 있으면 촬영하러 뛰었고, 주말마다 결혼식 영상을 촬영하곤 했다. 

 

 

그런 행사 촬영 도중 알게 된 분한테서 유튜브 영상 기획/제작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왔었다. 당시의 난 기자 준비를 하고 있던 도중이라 그냥 고마운 말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허리디스크가 터진 뒤로는 무엇이라도 당장 먹고살 길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언론고시 판은 10년이 넘어도 계속 준비하는 장수생이 종종 보일 만큼 험난했다. 최소 2년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5년이 넘어도 언론사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현재 내 상황에서 그런 불확실성에 몸을 들이미는건 도저히 감당되지 못할 일이었다. 아마 수시로 자살 충동이 밀려오겠지, 그렇기에 그때의 스카웃이 생각나자마자 정말 은혜의 단비라도 얻은 마냥, 돌파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나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상대방은 당황했지만, 내부 논의 끝에 나에게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편이 편안해졌다. 설 연휴를 쉬는 동안 디스크 통증이 아무리 와도, 전과 같은 히스테리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원하던 꿈은 아니었으나, 당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했다. 

 

 

연휴가 끝나고, 내부 논의 끝에 당장 정규직으로 취직하긴 어려울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달 동안 프리랜서 과정을 거친 뒤 정규직으로 들어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 번듯한 직장 경험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마이너스 요소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습 느낌이라 생각하고, 일하면 될 거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조금 고민 했지만, 일단 당장의 안정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 알았다고 답했다. 계약서를 쓰러 다음날 올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알았다고 답했다.  

 

 

 

 

본사가 있는 강남역에 도착해 15분을 걸어갔다. 회사는 서초동에 있었고, 건물 외벽은 낡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니,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멀뚱히 그 자리에 몇 분간을 서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회사는 이렇게 삭막한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나에게 취업제안을 한 직원이 찾아왔다. 본인은 현재 바쁘니, 바로 인사팀 부장을 소개해주고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앞에서 나는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2개월 간의 계약 동안 3.3% 원천징수한 임금이 매달 들어온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사실 첫 계약서를 쓰는 거라, 많은 부분이 낯설어서, 아는 노무사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터였다. 인터넷에서 사회 초년생이 근로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고, 덥석 계약하다가, 노예처럼 일만 하다 지냈다는 글을 심심찮게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련 노동법 조항도 미리 공부를 하고, 야근 수당과 주휴수당 지급 방법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갔었다.

 

 

다행히 계약서에 특이 한 내용이 있지는 않았다. 불합리해 보이는 조항도 없었고, 너무나 무난해서, 긴장하고 갔던 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내 이름 석자를 적어 제출하는 순간, 비록 계약직 프리랜서로 시작했지만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인의 인생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도비의 삶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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