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시리즈가 있다. 힐링 시리즈와 재태크. 쉽게 말해 "~해도 괜찮아.", "며칠 만에 몇억 벌기" 시리즈로 묶일 수 있는 책들이다. 한쪽은 그만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한 쪽은 끝없이 노력하라고 말한다. 이 두 시리즈는 겉으로 보기에 극과 극을 달리지만, 사실은 하나의 욕망으로 귀결된다.
'자유를 얻고 싶다'
재테크 책은 악착같이 주식이나 투자로 돈을 모아, 금전의 제약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돈이 있으면 의식주가 해결된다. 의식주를 해결하고도 충분할 만큼의 돈이 있으면 직장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으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9to6가 아니라 all 24를 즐길 수 있다. 먹고 싶으면 먹고, 가고 싶으면 가고, 놀고 싶으면 놀면 된다. 그야말로 자유로움을 얻게 만드는 게 돈이다.
힐링 책은 포기함으로써 자유를 얻으라고 말한다. 성공하는 건 극소수고, 경쟁이 과열된 상태에서 모두가 돈을 많이 얻을 수 없으니,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책들은 하나같이 소소한 행복이 자유를 준다고 말한다. 퇴근 후 마시는 술. 맛있게 먹는 치킨. 애인과의 평범하지만 달콤한 하루. 이것들을 모두 즐기고, 일에 치여 스트레스받더라도 평소에 행복할 일을 많이 만들면 삶은 자유롭다고 이 책들을 말한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간과한 점이 있다.
돈을 많이 벌도록 노력하라고 부추기는 쪽은, 대한민국의 과도한 경쟁 사회는 당연한 거고, 개인은 경쟁에서 살아남아 많은 부를 얻어 성공해야만 한다고 부추긴다. 경쟁 만능주의다.
일상에 만족하라는 쪽은 과도한 경쟁 사회에 치여 고통받지 말고, 포기하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한다. 경쟁 만능주의를 비판하지만, 이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경쟁 만능주의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두 가지 분류의 책은 경쟁 만능주의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흐름이라고 받아들인다. 경쟁이 치열해야만 진보하고, 개인은 성장할 수 있다고, 그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정말일까?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아주 높은 수준이다. 입시 시즌만 되면 모든 부모와 학생이 정신이 날카로워지고, 고액 입시 과외에 수천만원을 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근데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사실에 대해서 뉴스에서 수없이 인용되는 통계를 이 글에 넣지 않아도 많이들 알 것이라 생각된다. 저학력 노동자는 저임금을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명문대 학생도 취업이 힘들고, 석사 과정 학위를 요구하는 회사도 많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자라면서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겠지만, 우리의 교육은 장점을 키우지 못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되어있다. 법에 대해서 정말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국어와 수학을 못 해서 로스쿨에 못 간다. 이걸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게 대한민국 사회다.
물론 내 주장이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이 과연 학생의 장점을 부각하는 쪽으로 되어있는지는, 한번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매일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받고, 입시에서 미끄러지고, 좋은 대학을 못 간 사람에게 현실에 만족하라고 거듭 요구하는 책은 과연 정당할까?
반대로, 쉴 틈도 없이 끝없이 공부하고, 경쟁하고 그렇게 스펙을 쌓아서 취직한 사람에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아 자유를 얻으라고 말하는 책은 과연 타당한 주장을 말한 걸까?
이런 책들이 잘 팔리는 현실은 앞으로도 몇 년간 계속될 듯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몇 십년 뒤까지 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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