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집에서 나갈 생각을 않는 세입자 때문에 고민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남긴 유산이라곤 이 집이 전부다. 내 나이 고작 18살. 돈 되는 직장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생활비도 빠듯하다. 심지어 새로 들어온 세입자는 몇 달간 월세도 밀린 상태인데 200만 원만 주면 당장 나간다고 말한다. 내쫓을 힘도 없고 주위에서는 내가 너무 야박하다고 몰아 새우기만 한다. 돈이 없어 며칠 굶고 있으니 몸은 점점 야위어 간다. 아무도 내 삶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집 속에서 나가지 않는 조그만 세입자 때문에 앞으로도 참 걱정이다.
위 이야기는 동아일보 2011년 8월 기사에 소개된 미혼모 신 모 씨(18세)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음지에서 많은 의사가 시술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용이 상당히 비싸 개인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10대 가출 청소년이 임신했을 경우 금액을 지급하기 쉽지 않아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들 중에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거나 괜찮은 직장을 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배 속에 아이를 지키라고 하는 사회의 압력은 높지만, 현실적으로 생계도 힘든 상태라 쉽지 않다.
낙태를 합법화해야 하는 이유로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빈곤의 반복이다. 대다수 미혼모는 궁핍한 환경에서 지낸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한부모 가족의 생활실태와 복지 욕구 보고서’를 보면 미혼모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 원 이내다. 반면에 한 달 지출은 101만 ~ 115만 원 사이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날 아이에게 부모의 빈곤이 대물림 되는 셈이다. 두 번째 이유는 피임의 실패 가능성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질외사정을 피임법으로 알고 있지만, 삽입 중에 나오는 소량의 쿠퍼액에 정자가 들어있을 수도 있다. 가장 완벽한 피임기구인 콘돔도 실패율이 15%에 육박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성욕을 무조건 금하라고 말하는 것도 현실성이 부족한 이야기다.
세 번째는 낙태가 인간 살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태아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상호작용을 하는 시기는 임신 12주부터이다. 이 전까지는 신체기관만 만들어져 있을 뿐 제대로 된 뇌 활동이 없는 상태라 사람이라 부르기 힘들다. 낙태를 전면적으로 합법화하는 건 힘들더라도 잉태 12주까지는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 선진국에서도 이 기간까지는 별도로 처벌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일부는 수정란이 착상한 시점부터 생명이 태어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세포 덩어리, 외관만 갖추고 있는 존재를 인간이라 칭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2008년 법원 판결에서는 뇌사가 죽음에 이른 상태와 같게 볼 수 있다고 했다. 낙태를 완전히 금지하는 법에 정당성이 부족함을 과거에 이미 입증한 상황이다.
얼떨결에 들어온 세입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지만, 제도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사회 바깥으로 내몰려진 집주인들을 구제해야 한다. 한 명의 인생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이 가진 삶을 포기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그것이 앞으로 태어날 그리고 자랄 건강한 가정을 위한 최초의 발돋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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