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망하고 세상에는 살아있는 시체, 좀비들만 남은 아비규환의 미래. 그곳에서 생존한 인류의 마지막 희망들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이것은 현대 영화,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 좀비에 관련된 스토리이다. 특히 걸어 다니는 시체인 좀비에 관한 창작물은 히트의 필수요소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인 워킹데드는 전통적인 좀비 클리셰를 차용한 작품이다. 미국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는 워킹데드를 주제로 한 공포의 집이 있으며 2017년 여름 대구 이 월드에서는 좀비 타운이 열릴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이다. 만약 죽지 않고 살아있는 좀비가 현실에서 당신 곁에 다가오고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이미 우리 곁에는 수많은 좀비가 존재한다. 이 좀비가 되기는쉽다. 당신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채로 걸어 다니기만 하면 된다.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 좀비들을 우리는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라고 부른다. 스마트폰을 보고 걸어 다니는 이들은 눈앞에 무엇이 다가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좀비들처럼 거리의 무법자같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딪친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천만한 사고도 있었다. 지난 6월 8일 뉴저지주 플레인필드의 거리를 걷던 67세 흑인 여성이 약 2m 아래 지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스마트폰을 보고 가다 눈앞에 열려있는 지하실 문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아래 바닥으로 고꾸라진 게 원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보행자 중 3분의 1이 스몸비 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젊은 층한데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태어난 Z세대의 경우 아주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가지고 자랐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몸 일부다. 밥을 먹을 때도, 친구랑 놀 때도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한다. 아이들의 보행 안전은 특히나 위험한 수준이다. 경찰청의 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어린이 사망자 수는 9.2%로 증가했으며 이중 50% 이상이 스마트폰 사용이 원인이다. 특히나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위험한 이유는 일반 사람이 길을 걸을 때 보이는 시야각이 120도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보행자의 경우에는 10~20도로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잠깐의 지루함을 때우려 보는 스마트폰이 평생의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셈이다.
세계 여러 나라는 스몸비를 막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벨기에의 한 도시에는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한 전용도로가 생겨났으며, 싱가포르에서는 스몸비가 땅바닥을 보며 걸으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게 발밑 신호등을 설치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정책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횡단보도 입구 바닥에 스마트폰 정지선을 설치함으로써 보행자 사고를 줄이려 한다.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시에는 좀 더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법안을 제정해 스몸비 사고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해결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아직 큰 영향은 없는 셈이다. 최근 전동 킥보드, 전동 자전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인도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오면서 우리는 한순간도 지루할 일이 없어졌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어느새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디지털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지루함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출근길, 외출 길을 걷는 것조차 디지털 세대에게는 큰 지루함이다. 하지만 잠깐의 쾌락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단기간의 지루함을 떨쳐내기 위한 오락거리가 나 또는 누군가의 신체, 목숨에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다. 보행하는 동안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권리라면,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의무이다.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기 위해 걷는 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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