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에 대해서 불과 1년 전의 나는 헛소리로 치부(置簿)해버리고 스포츠(sports)와 정치(政治)를 연관성(聯關性) 있게 생각하는 것은 확대해석(擴大解釋)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의 글에도 대답했듯이 1년 전의 나 자신과 지금의 나는 생각하는 관점(觀點)이 상당히 달라져 있다. 지금의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의 바탕에는 정치(政治)적 이해관계(利害關係)가 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政治)적 이해관계(利害關係)란 각자의 이득(profit)과 손실(loss)을 따져서 가장 득이 되는 것을 찾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대부분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데, 지금까지 정치(政治)를 단순히 국익(國益)을 위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뉴스에서 나오는 정치(政治)인들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을 때도 있고, 정치혐오(politicophobia)에 빠지기도 쉬운데, 이를 단순히 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득(profit)을 취하기 위한 행위라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현상 전반에 이를 적용해볼 수 있다.
스포츠(sports)는 스타가 가진 우상(idol)적 기능과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사회적 시멘트(social cement) 효과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득점해 팀을 승리에 이끈 선수의 모습은 마치 고대 그리스시대의 영웅(hero)처럼 신(god)과 같은 아우라(aura)가 널리 퍼져 보인다. 그것을 지켜보는 관중들도 각자 응원하는 팀의 구성원으로서 그들과 동일시(同一視)를 느끼고, 자신이 소속된 팀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 살아오면서 쌓여왔던 삶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된다. 이런 일련(一連)의 과정들은 종교적 기능을 일부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 국가의 기틀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종교를 중심으로 온 백성이 똘똘 뭉친 것과 비슷하게, 현대에서 스포츠(sports)는 단순한 체육 활동 행사 외에도 국민을 하나로 뭉쳐 현 정부의 위치를 보다 굳히기 위한 정치(政治)적 의도도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1962년 칠레 정권은 격렬한 파업을 무마하는 데 월드컵(World Cup)을 이용했고, 1966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월드컵(World Cup) 우승을 틈타 임금을 동결했다. 또한 1936년 독일에서는 올림픽(Olympic)을 유치함으로써 내부적으로는 나치의 정당성을 확립시켰고, 외부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을 이기기를 원했다. 베를린을 정돈되고 깨끗한 도시로 보이게 하려고 집시 등 일부 유랑 민족들을 특정한 곳에 격리(隔離)시켰으며, 독일인이 승리한 종목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등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스포츠(sports)를 적절히 활용하였다.
스포츠(sports)를 정치(政治)에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것은 말뿐인 이상(理想)에 불과하다. 스포츠(sports)에 얽혀있는 경제적, 문화적 요소들은 모두 정치(政治)와 때려야 땔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언제나 거듭 강조하는 것이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처럼, 너무 정치(政治)적 요소가 많이 드러나는 행동은 지양(止揚)해야 할 점이다. 정치(政治)인들이 스포츠(sports)를 사용하기 좋은 도구가 아닌 국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매체로 생각한다면 이런 행동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인문학적 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는 일? 여자는 집안일? (0) | 2017.08.30 |
---|---|
이 시대의 새로운 영웅 스포츠 스타 (0) | 2017.08.28 |
한류의 허와 실 (0) | 2017.08.26 |
스타와 아우라 (0) | 2017.08.23 |
상업화된 문화 (0) | 2017.08.20 |